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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칼럽]COVID-19를 통해 본 우리의 불안과 불안장애-구본훈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작성자 : 정신건강의학과
조회 : 2408
작성일 : 2020-04-02 10:29:44
◈ COVID-19가 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까?
COVID-19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를 비롯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신문기사를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혹시 나도 확진자와 접촉을 했으면 어떡하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접촉이 되었을까?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다른 경로로 감염이 되면 어떡하지? 치료제도 없다고 하는데….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면 어떡하지?” 등 이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번지기 시작하면 금방이라도 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다양하고, 불안장애의 원인도 생물학적인 원인, 스트레스, 성격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든 불안과 불안장애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심리적인 원인은 안전에 대한 위협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우리는 자기 보호 본능으로 늘 위험을 피하고 안전해 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모든 불안의 원인은 그 기저에 자신이 뭔가 안전하지 못하고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될 것 같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또한 우리는 확실히 잘 아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별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지만 무엇인지 잘 모르고 아직 이해가 안되는 뭔가가 우리 앞에 놓여있을 때 불안하게 된다. COVID-19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도 우리의 건강에 해를 끼치고 심지어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안전에 대한 위협과 아직 정체가 밝혀져 있지도 않고 어떤 바이러스인지 불확실한 점들 때문이다.
◈ 불안감이 심해지면 어떻게 될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불안은 원래 우리를 위협으로부터 미리 대비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고, 불확실한 것을 조사하고 탐색해서 우리의 지식을 확장하여 환경에 적응하게 만드는 중요한 감정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생명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우리의 자기 보호 본능을 위협하는 수많은 스트레스들로 인해 정상적이지 않은 지나친 불안이 증가하게 되었다.
미리 대비하는 수준을 넘어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생각이 지나쳐서 걱정이 걱정을 만들게 되면 과도한 불안, 끊임없는 걱정, 초조감,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과민성, 불면, 그 외에도 가슴 두근거림, 식은땀, 호흡 곤란, 손 떨림 등의 각종 신체적인 불안까지 동반하게 된다. 급기야는 이로 인해 일상 생활을 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의 기능도 떨어지게 된다. 이 정도가 되어 스스로 불안을 조절하기가 불가능해지고, 시간이 지나도 불안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 어떻게 하면 이 불안을 떨칠 수 있을까?
첫째. 앞서 말씀드렸 듯이 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가 아닌 어느 정도의 불안은 당연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당연하다는 점이 중요한데, 불안은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 기쁨, 슬픔, 분노처럼 자연스러운 정상적인 감정이란 점을 알아야 하고, 이것의 의미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불안할 수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여기에 대해 어떤 심리적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즉, COVID-19란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가 세상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이에 대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걱정하고 있고, 또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도 하고 손도 자주 씻어야 하겠지만, 심리적으로 계속 걱정하고 뉴스 기사를 보고 두려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주위의 자극에 너무 빠지지 않아야 한다. 뉴스 기사나, 특히 휴대폰을 늘 가지고 있으면서 이와 관련된 자극을 자주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이나 걱정은 이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자극에 빠져 있기보다는 본인의 평소 생활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는, 불안한 감정을 천천히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불안을 일으키는 심리적인 원인 중 불확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그 대상을 잘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어 더 이상 불확실하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안도 사라진다. 모든 정신치료의 원리는 나 스스로도 잘 모르는 내 마음과 감정을 꾸준히 들여다 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서서히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설명하는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들여다 보는 팁 하나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 대상에 이름을 붙여 봅니다. 그것이 바이러스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의 해고가 될 수도 있고, 병이나 죽음일 수도 있고, 그 무엇이든지 간에 그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봅니다. 괴물이라고 해도 되고, 귀신이라고 해도 되고, 자신의 집에 찾아온 불청객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가 내 방에 들어오면 쫓아내지 말고 오히려 차 한잔을 대접합니다. 같이 차 한잔을 마시면서 그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에게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그의 특성은 어떤지를 자세히 천천히 들여다 봅니다. 마주하기 싫어서 내가 나가거나 그 대상을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도망가도 늘 따라오는 불청객이니 싫어도 절대로 쫓아내지 말고 같이 마주해서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가능하다면 그에게 말을 걸어보고 그가 스스로 나갈 때까지 옆에 같이 있어 봅니다.” |
예전에 일본영화 “링”을 처음 보았을 때 사다코 때문에 무서워서 밤새 잠을 못이루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후 영화 “링”을 여러 차례 다시 보게 되고 사다코를 희화한 광고 등을 자주 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사다코는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이처럼 불안의 치료에 있어서 노출의 힘은 필수적이다. 불안한 것은 우리가 피할수록 점점 더 커지게 되고, 우리가 기꺼이 맞이하고 관찰할수록 점점 더 줄어들게 될 수밖에 없다.